페라라와 수도승 사보나롤라
글쓴이 : 공병호       등록일 : 2014-09-26 19:18:00    조회수 : 3828
안녕하세요.
페라라(Ferrara)는 르네상스기의 유력한 후원자이자
만토바 공화국의 안주인이었던 에스테의 친정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에스테 가문이 번성하였던 곳이 페라라이고
지금도 에스테 성이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 성에 붙어 있는 광장에는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1452~1498)의 동상이
우뚝 서 있습니다. 제가 이 인물 동상이 페라라의 광장에 우뚝 서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하였습니다.
에스테 성을 구경하고 난 다음 이리 저리 기웃거리다가
어디서 많이 보던 인물이 우뚝 서 있기에 자세히 보니까
사보나롤라 이더군요.
나중에 문헌을 살펴보니까 이 인물이 페라라 출신이었습니다.
한치의 타협이 없을 정도의 원칙주의자 답게 매몰차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페라라의 두오모를 들어가지 전에 사보나롤라고 추정되는 인물이 오른쪽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례적인 일이기에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해 두었지요.



* 페라라의 두오모(1135년에 걸립)를 정면에서 바라보면 오른쪽에 서 입상으로 서 있는 사람이
사보나롤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자료를 추적해 보니까 이 인물은 사보나롤라가 아니라
'Alberto V d'Este(1347~1393, 페라라와 모데나의 영주이자 1391년 페라라 대학교를 세웠던 인물)
입니다. 


수도승이었던 사보나롤라는 금욕주의를 강조했던 수도승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한 때 피렌체의 정치(1494~1498)에도 깊숙이 간여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분노한 군중에 의해 1498년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에서 
화형당하고 말았지만.


“이탈리아의 도미니크회의 수도사이자 종교개혁가이다. 
민주정치와 신재정치(神裁政治)를 혼합한 헌법으로 피렌체를 
통치하려 했으나 교회 내부개혁에 과격한 방법을 취함으로써 
크게 반감을 샀다.“-<두산동아>


마키아벨리는 그의 저서 <군주론>에서 이 인물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출생하였던 페라라에는 동상을
세워 그를 기념할 정도로 부패한 카톨릭에 대한 개혁의 불길을 높이
올린 위대한 수도승으로 기념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광장에 위치한 대성당(두오모)의 입구에도 그의
동상을 새겨놓을 정도였습니다. 

훗날 종교개혁을 주도하였던 인물들은 대부분 그를 종교 개혁의 선구자
혹은 순교자를 그를 받아들였고 그의 저작물들을 깊이 탐구하였다
합니다. 

역사는 누가 어떻게 평가하는 가에 따라 이토록
극명하게 다른 대접을 받는 가 봅니다. 




참고자료: 
“사보나롤라가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에 파견된 것은 
메디치 가문의 권력이 정점으로 치닫던 바로 그무렵(1481년)이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대담하게도 교황과 교회의 부패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메디치 가문의 세속적 통치도 강하게 공격했다. 
그리고 부자의 교만과 사치 그리고 음란과 방탕함을 강하게 질타했다. 
사회적인 도덕을 세우자고 주장하며 경건한 수도생활을 개혁의 
방향으로 제시한 사보나롤라에게서 민중들은 어두운 중세를 
비추는 떠오르는 샛별이었다. 
가난과 권력에 눌린 민중들은 여름 한 나절의 소나기 같은 
환호를 그에게 보냈다. 그 환호는 1494년, 프랑스 왕 
샤를 8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때 사보나롤라가 
평민들과 함께 그들을 용감하게 물리쳤을 때 절정에 달했다. 

마침내 수도원장 사보나롤라는 피렌체의 최고 정치적 
지도자가 되었다. 1497년 사보나롤라는 강력한 종교개혁을 
선포하면서 시 광장에서 보석과 의복 등 화려한 것들과 풍기를 
문란케 하는 서적들을 수거, ‘허영의 화형식’을 가졌다. 
그는 세속적인 음악을 금지하고 성가를 보급했으며 행정과 
조세 개혁을 단행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공격한 대상은 교황 알렉산더 6세였다. 
그는 자식을 다섯이나 둔 세속적인 교황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던 인물이었다. 
교황은 군중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사보나롤라를 어떻게 
복종시킬까 노심초사하다 설교하지 말도록 지시하기도 하고 
다른 방법으로 회유하기도 했으나 사보나롤라의 태도는 확고했다. 
추기경 자리로 유혹하는 교황에게 그는 이렇게 선포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추기경의 붉은 모자가 아니라 오직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 주신 바 순교의 피로 물든 붉은 모자입니다.” 
-출처: 이윤재, “(16)피렌체의 사보나롤라:이윤재의 ‘영성의 발자취’”,
[국민일보], 2012.4.22
-공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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