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영광: 페라라의 에스테 가문(House of Este)
글쓴이 : 공병호       등록일 : 2014-09-26 19:22:00    조회수 : 3811
안녕하세요.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에는 유력 가문들이 예술가들의 
후원자(patron)으로 나서게 됩니다.

이때 페라라에 기반을 둔 에스테 가문(Hosse of Este)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마찬가지로 예술가를 후원하였던 대표적인 가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르네상스기를 대표하는
당찬 여인이자 예술가의 후원자로 활동하였던
이사벨라 에스테(Isabella d'Este, 1474~1539) 때문입니다.

그녀는 페라라의 에스테 성에서 나서 자라
인근에 있는 만토바로 시집을 가게 됩니다.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을까라는 것이 무척 궁금하였거든요.
그녀가 자란 에스테 성(Castello Estense)는 해자를 사이에 두고 온전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출처: Massimo Bergami, http://www.panoramio.com/user/1025585/tags/Ferrara




집안의 분위기라는 것이 아주 중요하지요.
이사벨라 에스테는 1474년에 장녀로 태어나는데 바로 그 이듬해인 1475년에
여동생인 베아트리체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남동생 세 명이 그 뒤를 잇게 됩니다.
아버지 에콜 에스테(Ercole I)와 어머니 엘레오노라 아라고나(Eleonora d'Aragona)
사이에는 ...

-Isaberlla(1474~1539)
-Beatrice(1475~1497)
-Alfonso I(1476~1534)
-Glulio(1478~1561)
-Ippolito(1479~1520)

이사벨라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기 동안 가장 중요한 후원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습니다. 


이사벨라 에스테의 아버지인 에콜 에스테

이사벨라의 아버지 에콜 에스테(1431-1505) 치하 동안 페라라는 여러 공화국 가운데서도
'문화 센터(a cultural center)'로 성장합니다. 특히 음악에 있어서 말입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의 여인들]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대국에 둘러싸인 중간급 정도의 공국이라는 어려운 정치적 여건 속에서도,
에스테 가문은 예로부터 문예 취미를 숭상하는 가풍을 가지고 있었다.
궁전은 안토니오 피사넬로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벽화로 장식되고, 
궁전 발코니 벽에는 시바 여황의 솔로몬 왕을 방문한 장면을 묘사한 야코포 벨라니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게다가 페라라에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대학이 있었고, 이탈리아 전역에 이름이 알려진 이 대학의 교수들은
자주 궁정에 초빙되어 대화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따금 열리는 궁정 음악회에서는 이사벨랑늬 어머니가 하프를,
큰아버지인 레오넬로가 기타를, 남동생 알폰소가 바이올린을, 아사벨라와 베아트리체
자캐가 류트를 연주하곤 했다."-p.24.


1490년 2월 이사벨라는 열여섯 살에 이웃 나라인 만토바 영주인 프란체스코
곤차가 후작(Francesco Gonzaga, Marquess of Mantua)과 결혼을 합니다. 
콘차가 가문으로 시집을 가게 된 것이지요. 

  
-이사벨라 에스테 vs 프란체스코 곤차가



반면에 베아트리체는 만토바 보다 훨씬 크고 잘 사는 밀라노의
루도비코 스포르차(일 모로)(Ludovico Sforza, Duke of Milan, 1452~1508)에게
시집을 갑니다. 남편과의 나이 차이는 20살 정도였습니다.
남편인 루도비코 스포르차는 어린 아내가 마냥 귀워서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대부분 허락하였습니다. 


  
-베아트리체 에스테 vs 르도비코 스포르차(일 모로)


여자의 운명이란 결혼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지게 되지요.
만토바 후작과 이사벨라가 약혼을 한 사이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밀라노로 시집을 갈 뻔 하였습니다. 
1491년 겨울,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밀라노를 방문한
이사벨라는 대도시의 화려한 생활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간발 차이로 운명이 갈리게 된 것이지요.
언니의 화려함에 가려서 빛을 보지 못하였던 베아트리체는
밀라노에서 한껏 꽃을 피우게 됩니다.

이사벨라가 딸을 잇달아 낳고 풀이 죽은 반면에
두 아들을 낳은 베아트리체는 기고만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1495년 그녀는 사산을 하고 한 시간 뒤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때 그녀의 나이가 22세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젊은 나이였습니다. 

반면에 그녀에 비해 불리한 조건에서 출발한 언니 이사벨라는
오래 오래 살았고 르네상스기를 통해 예술가들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은 여걸로 역사속에 이름을 남기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사벨라 테스테는 언제나 냉정한 눈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진수인 투철한 합리적인 정신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이사벨라 테스테는 타고난 정치가였다.
그녀가 평생토록 견지한 활기차고 대담한 영혼, 냉철한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합리적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정치가의 본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로 뒷받침된 경우에는 권모술수도 아름답낟.
예술적으로 아름답다.
그녀는 예술가를 보호함으로써 '아름다움의 벗'이 되고자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예술의 후원자'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정신인 활기차고 대담한 영혼과 냉철한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합리적 정신을 구현한 일생을 통해,
그녀는 예술의 후원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아름다움의 벗'이었다.
이사벨라가 문자 그대로 '르네상스 시대의 아이'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지도 않았지만 시대에 떠밀려가지도 않았던 그녀의 생애가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p.22

-공병호

*** 페라라 관광을 위한 자료(Visit Ferrara and its province)
http://www.dasanto.it/wp-content/themes/dasanto/download/visitare%20ferrara%202012%20uk.pdf


  



 





 



  





          
    이사벨라의 어머니
    페라라와 수도승 사보나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