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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쇼인(1830~1859)은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죠슈번 출신인 그의 사상은 에도막부로 대표되는

기존의 패러다임에 한계를 느낀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이런 영감과 자극이 메이지유신의 성공에 기여하게 됩니다.

또한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스승이자 정한론의 주창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세진,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호밀밭)

잘 쓴 책입니다.

가볍게 읽으면서 한일관계, 일본의 근대사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책입니다.

 

요시다 쇼인의 짙은 그림자

 

일본의 친황제, 독도 영유권 주장, 일본군 위안부, 조선인

강제징용, 집단자위권법 개정, 평화헌법개정 등 한일 관계

역사의 이슈들이 차근차근 거슬러 올라가면서 태평양전쟁과

군국주의 그리고 메이지유신을 마주치게 된다. 일본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이지유신에서 한 걸음 더 거슬러 오르면

조슈번과 쇼카손주쿠, 그리고 요시다 쇼인을 만나게 된다.

2018년을 기준으로 쇼인이 사형당한 지 160여년이 됐지만

오늘날에도 곳곳에서 살아 숨 쉬는 쇼인을 만날 수 있다.

 

1. 독도 영유권

 

오늘날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인

독도 영유권 문제에 있어서 요시다 쇼인을 빼놓을 수 없다.

쇼인은<유수록>에서 한반도로 진출하기 위해 가장 먼저

다케시마를 점령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1858년에 쓴

<다케시마 개척의견서>는 메이지유신 3걸 중 2명인 기도

다카요시와 이노우에 가오루, 시마네 현령이 된 사이토 에조

등이 정책을 추진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원래 쇼인의

다케시마는 울릉도 근방을 의미했지만, 점점 독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교모하게 둔갑했다.)

 

그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조선 만주에 진출할 때 다케시마(울릉도)는 첫 번째 발판이다.

영국이 다케시마를 이미 점거했다면 그대로 두면 안 된다.

언제 일본에 쳐들어올지 모른다.

죠수번은 다케시마와 조선을 급선무로 점령해야 한다.(1958628)“

 

2016815일 제71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한국의 정치인들은

독도를 방문했다. 그런데 일본의 국회의원들이 독도에 상륙한

근거가 되는 역사적 사실과 법률 해석 등 7가지 질문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도쿄에서 독도반환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2017년도 정부예산에 독도영유권 반환예산을 편성하였으며,

2018년 현재는 도쿄에 다케시마 박물관을 설립 하고, 일본의

초중고등학교 모든 교과서에서 한국이 독도를 불법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의 한일관계에 있어서도 핵심적이며

민감한 의제로 다뤄질 독도영유권에는 요시다 쇼인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2.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이와타 시게노리라는 학자는 '죽은 자를 제신으로 모시는 신사 및

새로운 인격신의 형성은 정치적 의도아래 실현 된다'고 했다.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위패를 모아놓고 그들을 으로 모시며 기리는

신사다. 일본 정치인들이 방문하여 참배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중국

등 주변국가와 외교마찰이 벌어질 정도로 민감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A급 전쟁범죄자 14명의 위패를 기리는

것은 한국과 중국에게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의 우익사상과 역사 인식을 상징하기도 하는 야스쿠니

신사의 원래 이름은 '섬뜩하게도‘(조슈신사(長州神社)였다.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쇼카손주쿠 학생들과 조슈에서 태어난

인물들이 주도하여 18698월 도쿄의 지요타 구에 조슈신사를

세우고 요시다 쇼인과 다카스키 신사쿠 등의 위패를 가져다 놓았다.

그로부터 10년 뒤, 메이지 천황이 조슈신사의 이름을 야스쿠니

신사로 바꾼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185월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는 일본을 위해 목숨 바친 약 246만여 명의 위패가 있다.

(그 중 대한제국의 이우왕자2 조선인 21,142명이 포함되어 있다.

강제징용자나 강제 노역자가 대부분이라 신사에 일방적으로

위패를 둔 것에 대한 논란이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거의 모든 언론은 야스쿠니 신사와 관련된

기사를 다룰 때 그 근원에 대해 알리지 않으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의 근원에는 요시다 쇼인이 있다.

 

3,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야마구치 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후루카와 가오루(古川薰)[유혼록의 세계]를 애독하고, 요시다 쇼인과

관련된 서적을 즐겨 읽으며 영향을 받았고, “쇼인 선생을 존경한다.”

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4년에는 요시다 쇼인의 삶과 사상, 교육을 전파하고자 개간 된

월간 쇼카손주쿠仴刊松下村塾)의 창간호에 응원 메시지를 썼는데

쇼인의 가르침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가치관을 창출해내자

강조했다. 또한 이 글에서 자신의 아버지이자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아베 신타로의 영결식에서 유혼록>을 인용해 추모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공물을 봉납해 왔다, 2013년 총리에

재선된 아베 신조는 그해 813일 하기의 쇼인신사를 참배하고,

쇼인의 묘지까지 찾아가 "쇼인 선생은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는

매우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나도 앞으로 어려운 판단을 앞두고 있지만

(쇼인을 본받아) 올바르게 판단하겠다."라고 했다. 이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법이 개정되고, 우익화가 더욱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으며

경제성장을 견인해 최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2018년 현재는

일본 우익의 오랜 염원인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기까지

평화헌법 개정이라는 마지막 수순만 남아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일본의 집단자위권과 관련하여 우리의 동의 없이는 한반도에 자위대가

들어올 수 없다'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160여 년 전 요시다 쇼인이 한반도 정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그의 학생들이 일본의 이익선은 한반도'라는 개념 아래 구체화시킨

정책들은 오늘날 아베 신조를 포함한 우익정치세력의 신념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출처: 김세진,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호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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